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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고 있는 박에디씨에겐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는 것 조차 어려움 투성이다.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공문서 상에 반영되지 않아 그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질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청소년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일을 하는 박씨는 신용카드 발급조차 난관이었다. “전화번호로 인증을 하는데 굉장히 시간이 걸렸어요. 본인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라고. 그리고 신용카드를 받는데 갖다 주러 오신 분도 박씨를 보고는 “제가 내일 다시 오겠다” 하였다. 박씨는 다음날 웃으면서 그를 반기며 자신이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의료기록을 보여준 후에서야 카드를 수령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의 삶은 순탄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포용성은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낮으며, 아직까지 성소수자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박씨는 트랜스젠더 활동가이자 정치인 김기홍씨와 성확정 수술 이후 군에서 본인의 복무의사와 상관없이 전역처분을 받은 변희수씨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고인이 되어 떠난 이들은 죽기 직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절망감을 주변에 표현하곤 하였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꾸준한 시민활동을 발판 삼아 현재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총 4개의 차별금지법안이 회부되어 있고, 대중도 차별금지법을 원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대답했으며, 10명 중 9명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열망이 고조되는 현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지오씨는 “2021년을 차별금지법 제정 원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이기기엔 아직 멀었다. 차별금지법 지지자들은 성소수자들이 자유를 보장받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는 보수기독교계 정치세력과 맞서야 한다. 사회에 만연한 보수적 사고방식 역시 큰 벽이다.
바이섹슈얼이자 페미니스트인 유튜버 수낫수씨는 “[여성 성소수자가] 존중을 받으려면 일단 인식이 있어야 되잖아요. [하지만] 인식 자체가 안 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미디어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얕은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코로나19 위기가 한국의 성소수자 공동체에 미친 영향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소수자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편견은 더욱 견고해졌다. 카페나 음식점은 트랜스젠더들이 비교적 용이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직종이었고, 박씨의 트랜스젠더 지인들도 요식업계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속되는 불경기에 이들은 직장을 잃었고, 그 중 몇몇은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를 택하기도 하였다. “이게 코로나로 죽느냐 배고파서 죽느냐가 나뉘어지는게 보여지는 거에요” 라고 그는 말했다.
박씨가 사는 이태원은 성소수자들에게는 편안한 동네이다. 하지만 지난 5월은 달랐다. 130명 넘는 확진자 클러스터의 근원지가 이태원의 클럽으로 지목된 탓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정부는 확진자 동선 추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보수 매체들은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 클러스터와 관련된 이들의 성적 지향에 대한 추측을 일삼고 있었다.
복음주의 기독교계 매체인 국민일보에서는 “[단독]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라는 제목과 확진자의 거주지와 직종이 적힌 내용을 담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 기사는 삽시간에 뉴스와 소셜미디어에 퍼졌고, 성소수자를 겨냥한 차별과 폭력적 언사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클럽의 대문은 계란과 낙서로 훼손되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긴급 성명을 통해 뉴스매체의 특정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보도는 질병 예방의 발목을 잡을 뿐이라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후 단체들은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를 꾸리고 지방정부와 면담에서 성소수자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익명검사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이 시기부터 코로나 검사는 점진적으로 익명검사제로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되돌아보며 한국의 커밍아웃 1호 연예인 홍석천씨는 “어떤 뭔가가 새롭게 터지면, 공포가 생기면, 늘 사람들이 희생물을 찾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20년 싸우고 나서 이제 좀 나아졌을까?’ 이랬는데, 코로나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어가지고 힘들었다”고 밝혔다.
청양에서 자라 대학을 위해 상경을 한 홍씨는 대학시절부터 이태원에서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2000년에 커밍아웃으로 인해 방송출연이 힘들어지자, 이태원을 터전삼아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성소수자들과 비성소수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한 홍씨는 한때는 이태원 일대에 7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레스토랑 문을 하나 둘 닫았고, 지난 8월 마지막 사업장의 문을 내렸다.
코로나는 혐오받는 질병이란 것에서 HIV/AIDS와도 닮았다. HIV/AIDS인권활동가 소성욱씨는 “[코로나 확진을] 둘러싸고 엄청 비난이 쏟아졌던게 에이즈 혐오랑 되게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3T(test-trace-treat; 검사-추적-치료/격리)전략이 전염병 확산을 완화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철저한 추적 시스템은 아웃팅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이태원과 종로와 같이 성소수자 업소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지역들은 성소수자 공동체에 너무나도 중요한 공간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에 성소수자들은 이 공간들을 마음 편하게 다니지 못한다. 혹여 코로나 확진자 동선 공개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
대한민국에서 인종, 종교, 결혼여부, 성정체성 및 성적 취향을 기반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는 올해로 여덟번째이다.
지난 일곱번의 법제화 움직임 속에서 보수기독교 단체들은 차별금지법 자체를 반대하거나 특정 조항이 누락된 채 제정시키기 위해 국내 정치에 막강한 세력을 행사해왔다. 예를들어, 2008년에는 의회선교연맹의 압력으로 성적 지향을 포함한 6가지 차별 사유가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에서 누락되기도 하였다. 또한 우파 기독교세력은 매년 퀴어퍼레이드에서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제1회 퀴어문화축제에서는 1,000여명의 인근 교회 신도들이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언어적, 신체적 공격을 가했다. 홍씨가 커밍아웃했을 때인 2000년도, 즉 20년 전에는 기독교인들이 방송국 앞에서 연예계에서 그가 퇴출되기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방송국에 그 [시위를] 통과해 나가야 되는데 되게 공포스러웠다” 라고 그는 기억했다. “방송국 사람들이 그런 것 때문에 나를 쓰지도 못하고. 항의하고 이랬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이 각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차별금지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들은 차별금지법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과 차별의 형사처벌 가능성에서 차이점을 보이지만, 세 법안 모두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차별 사유로 정의하고 있다.
정의당도 차별금지법안을 제출했고, 이 법안은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되어 3주 안에 10만명 서명 목표를 달성하였다.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이 법안은 법사위에 자동으로 회부되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다같이 새로고침하고 있었어요.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된 순간 사무실에서 다 같이 환호성을 지르고. 스샷도 찍고. 제정된 것도 아닌데 너무 감동했어요. 벅참이…” 라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집행위원인 김용민씨가 말했다. 그는 소성욱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동거하며 2019년 결혼식을 올린 김씨와 소씨는 두 사람이 남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부양가족 자격이 박탈되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김씨는 ‘성덕’ 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제가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시작한게 동성혼 하려고 한거거든요. 제 꿈을 찾아서 차츰차츰 나아간 거라서, 제 꿈을 이룬 성공한 덕후(성덕)로 기억되고 싶다” 고 말했다.
하지만 장애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차별금지법안은 신속히 통과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동의청원은 10만명의 서명 목표를 달성한 후 90일 이내에 검토되어야 하지만, 위원회는 이 기간을 연장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 법안이 계속해서 미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22년 대통령 선거가 올해 입법 절차를 더욱 지연시킬 것이라 예상한 활동가들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에 법안을 검토하고 통과시키도록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민행동을 기획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지오씨는 “법 제정은 국회의 역할이지만 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 시민들이 주도하여 여기까지 만들어왔다. 국회가 이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부 세력의 눈치보기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정치로서 자신들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박씨는 도움이 필요한 그 모든 이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한다. 그가 위기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많은 성소수자 가출 청소년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팬데믹의 시대에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받아줄 쉼터를 찾는 건 예전보다 힘들어졌으며, 직장에서는 해고대상 일 순위가 되어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가정폭력을 무릅쓰고 원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이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투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라고 박씨는 말한다.
홍씨 역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난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인데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거잖아요. 정체성때문에. [차별]에 대한 보호장치 —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장치들이 법적으로 제정된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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